현대차 양재 사옥에 부는 로봇 바람과 증시 랠리… 남은 건 ‘아틀라스’와 노조의 청구서

축구장 5개 크기에 달하는 현대자동차 양재동 본사의 리노베이션 공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느껴지는 건 압도적인 규모가 아니라, 그 안에서 조용하고 묵묵하게 움직이는 기계들의 목적성이다. 1층 로비에서는 3D 비전으로 식물의 위치와 구조를 파악한 ‘달이 가드너(DAL-e Gardener)’가 매끄럽게 다가와 6축 다관절 팔을 뻗어 정교하게 물을 준다. 물이 부족해지면 건물 시스템과 알아서 소통해 탱크를 채우는 식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안면인식 기술 ‘페이스(Facey)’를 탑재한 로봇이 직원들의 얼굴을 스캔해 사원증 없이도 정확한 주인에게 모닝커피를 배달하고, 늦은 밤이 되면 4족 보행 로봇이 인적 끊긴 복도를 순찰하며 보안을 책임진다.

현대차가 ‘연결’과 ‘협업’을 테마로 새롭게 단장한 5개 층은 단순한 사무 공간을 넘어, 인간과 로봇의 상호작용을 실험하는 거대한 리빙 랩(Living Lab)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생태계가 꽤나 치밀하게 설계되어 있다는 거다. 로봇들의 전용 엘리베이터가 따로 배정되어 사람의 동선을 방해하지 않으며, 1층에 마련된 전용 ‘로봇 스테이션’은 충전과 대기의 허브 역할을 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통합 관제 시스템 ‘나르콘(NARCHON)’이 웹 앱을 통해 이 로봇 군단의 위치, 배터리 상태, 스케줄을 실시간으로 지휘하며 PnD(플러그 앤 드라이브) 모듈과 라이다 센서로 무장한 기계들이 바쁜 로비를 안전하게 누비도록 돕는다.

증시를 집어삼킨 로봇 생태계에 대한 갈망 눈앞에 구현된 이 매끄러운 미래는 고스란히 자본시장의 탐욕을 자극했다. 올 초부터 한 달도 채 안 되는 기간(1월 2~23일) 동안 개인 투자자들이 현대차 주식에만 무려 3조 4010억 원어치를 쏟아부으며 순매수 1위 종목을 갈아치웠다. 그동안 국내 증시를 주도하던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반도체 대장주들을 밀어낸 결과다. 연초 대비 현대차의 주가 상승률은 70.9%에 달해, 같은 기간 삼성전자(18.4%)와 SK하이닉스(13.3%)의 성적표를 훌쩍 뛰어넘었다.

돈의 흐름은 개별 종목에만 머물지 않았다. 로봇 관련 상장지수펀드(ETF)로도 뭉칫돈이 빨려 들어가는 중이다. 한 주간 개인 순매수 2위를 기록한 ‘TIGER 코리아휴머노이드로봇산업’ ETF에는 1787억 원이 유입됐고, 현대차 편입 비중이 높은 ‘KODEX 로봇액티브’에도 500억 원이 넘는 자금이 쏠렸다. 시장이 현대차를 더 이상 단순한 자동차 제조사가 아닌, 로봇 산업의 최전선에 선 기업으로 재평가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자본이 환호하는 ‘아틀라스’의 경제학 여의도 증권가도 덩달아 바빠지며 목표 주가를 공격적으로 올려 잡고 있다. 삼성증권은 65만 원이던 목표가를 85만 원으로 30%나 끌어올렸고, KB증권 역시 80만 원을 불렀다. 다올투자증권의 유지웅 연구원은 “3년 후 자동차 공장에 휴머노이드 로봇을 적극적으로 투입할 수 있는 기업은 테슬라와 현대차가 유일하다”며 64만 원을 제시했다.

애널리스트들이 이렇게까지 확신에 찬 목소리를 내는 배경에는 단순한 기대감을 넘어선 ‘숫자’가 있다. 삼성증권 임은영 연구원의 분석처럼 현대차는 이미 양재동 사옥 같은 자체 밸류체인을 통해 로봇의 행동 데이터를 확보하고 AI를 훈련시키는 실증 단계를 거치고 있다. 여기서 핵심은 공장 투입을 앞둔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다. 배터리 교환식으로 사실상 24시간 풀가동이 가능한 이 로봇이 3만 대 이상 양산 체제에 들어가면 시간당 원가가 1.2달러 수준까지 곤두박질친다. 자본의 입장에서 이토록 매력적인 원가 절감 시나리오는 찾아보기 힘들다.

평화로운 로비와 대비되는 서늘한 현장, 노조의 반격 하지만 양재동 로비에서 매끄럽게 커피를 나르는 로봇들과 달리, 이들을 실제 생산 라인에 밀어 넣으려는 과정은 상당히 거칠고 파열음이 크다. 아틀라스 도입을 둘러싼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의 강력한 반발이 현실적인 리스크로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노조는 소식지를 통해 “로봇 투입 시 고용 충격이 예상된다”며 “노사 합의 없이는 단 한 대의 로봇도 현장에 들일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일자리 증발에 대한 현장의 공포가 전면적인 실력 행사로 이어진 것이다.

시장은 귀신같이 이 서늘한 공기를 읽어냈다. 노조의 강경한 입장이 발표된 직후 현대차 주가는 22일 3.65% 미끄러진 데 이어 23일에도 3.59% 하락했다. 연초 랠리 이후 연이틀 주가가 빠진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여파는 그룹주 전반으로 퍼져 기아(-3.4%), 현대글로비스(-4.0%), 현대위아(-2.0%)도 동반 약세를 면치 못했다.

결국 현대차가 맞닥뜨린 진짜 과제는 라이다 센서의 정밀도를 높이거나 나르콘 시스템의 반응 속도를 단축하는 데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가장 고도화된 기술 혁신조차 고용이라는 생존권 문제 앞에서는 멈춰 설 수밖에 없다는 묵직한 현실. 완벽하게 통제되는 사옥 안의 로봇 생태계와,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공장 라인의 틈새를 어떻게 메우느냐에 따라 이번 로봇 랠리의 진짜 종착지가 결정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