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기술의 폭발적인 성장은 실리콘 밸리에 스마트폰 시대 이후 가장 치열한 경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기술 대기업들은 가장 진보된 모델을 개발하고, 최고의 연구 인력을 확보하며, 막대한 컴퓨팅 파워를 손에 넣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쏟아붓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치열한 AI 경쟁은 역설적으로 경쟁자들을 그 어느 때보다 가깝게, 때로는 불편할 정도로 밀착시키고 있습니다.
어제의 적, 오늘의 동지
최근 몇 주간의 상황만 봐도 이러한 현상은 명확히 드러납니다. OpenAI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MS의 경쟁사인 오라클의 컴퓨팅 파워를 사용하기 위해 3,000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한편, 메타는 구글 클라우드와 100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맺었습니다. MS 역시 아마존(AWS)과 구글의 클라우드 서비스에서 구동되는 앤트로픽의 AI 모델을 자사 고객에게 제공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겉으로는 ‘AI 전쟁’이라 불릴 만큼 치열해 보이지만, 이면에서는 서로의 필요에 의해 전례 없는 협력 관계가 형성되고 있는 것입니다.
투자 회사 D.A. 데이비슨의 길 루리아 상무는 “AI 시장의 판돈이 너무 커졌기 때문에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며, “이는 자신의 기술을 발전시키면서도, 다른 경쟁자가 승리할 경우 그 흐름에서 뒤쳐지지 않으려는 거대한 체스 게임과 같다”고 분석했습니다.
복잡하게 얽힌 상호 의존성의 위험
하지만 이러한 밀착 관계는 과연 안전할까요? AI 관련 계약들은 대부분 부채를 기반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기업들 간에 복잡하고 중대한 의존성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지난 9월 말, 엔비디아는 OpenAI에 1,000억 달러를 투자한다고 발표했고, OpenAI는 엔비디아 칩으로 최소 10기가와트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겠다고 화답했습니다. 이 동맹은 기업이 자사 장비를 구매하도록 대출을 제공했던 1990년대 시스코의 ‘벤더 파이낸싱(vendor financing)’ 사례를 떠올리게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시 시스코의 전략은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복잡하게 얽힌 AI 트위스터 게임에서, 만약 거인 중 하나의 다리가 미끄러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과거로부터 이어진 필연적 선택
사실 실리콘 밸리의 지배력은 적과의 동침을 통해 구축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구글은 아이폰의 기본 검색 엔진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직접적인 경쟁자인 애플과 오랜 기간 계약을 맺어왔고, 이로 인해 최근 미국 법무부의 조사를 받았습니다. (법무부에 따르면 2022년 구글이 애플에 지급한 금액은 무려 200억 달러에 달합니다.) 클라우드 시장의 성장 역시 거대 기업들이 제공하는 컴퓨팅 파워를 소규모 경쟁사들이 임대하며 복잡한 의존 관계를 만들어냈습니다. 아마존은 프라임 비디오에서 애플 TV+를 제공하고, 넷플릭스는 아마존의 클라우드 서버(AWS)에서 운영됩니다. 이는 마치 거인 골리앗이 다윗에게 돌팔매를 설계하고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이제 AI 붐은 기존의 관계를 더욱 심화시키고, 필요에 의한 새로운 세대의 파트너십을 촉발하고 있습니다. 지난 9월 골드만삭스 기술 컨퍼런스에서 OpenAI와 메타의 CFO는 모두 자사가 구글 클라우드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심지어 애플조차 구글의 텐서 처리 장치(TPU)를 사용하여 AI를 훈련시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편 구글 클라우드 고객들은 엔비디아의 GPU를 원하기 때문에, 구글은 경쟁사 칩을 임대하여 자사 클라우드를 통해 제공합니다.
이러한 거래는 대부분 현실적인 판단에 따른 것입니다. 많은 기술 기업들이 AI 붐의 급작스러운 부상에 미처 대비하지 못했고,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경쟁자에게 의존하고 이례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RBC의 리시 자루리아 애널리스트는 “거대 언어 모델을 구축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며, “재무적 부담을 직접 지지 않으면서 그 혜택을 누릴 방법은 무엇이겠는가?”라고 반문했습니다.
AI 버블 우려와 시장 전망
일부 기업들은 닷컴 버블의 악몽을 떠올리며 조급해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자루리아 애널리스트는 “인터넷 시대를 놓친 기업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는 보았다. 시어스는 아마존이 될 수 있었고, 블랙베리는 기업용 모바일 시장을 지배할 수 있었다”며, “모두가 과거의 교훈을 되새기며 이번 AI 경쟁에서는 절대로 뒤처지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이러한 과열 양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자산운용사 임팍스 에셋 매니지먼트 그룹의 이안 심 CEO는 AI가 주도하는 버블에 대한 우려가 빅테크로부터의 급격한 자금 이탈을 촉발할 경우, 자사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미 그러한 혜택이 나타나고 있다는 신호를 보고 있다”고 덧붙이며 시장의 잠재적 변화 가능성을 시사했습니다.